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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교수협, ‘개방이사 선임’ 이사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 1심 승소
법원 “교수 배제한 개방이사 선임은 개방이사 도입 취지와 맞지 않아..중대한 하자”
“총장 3연임 결의는 사학법상 학교법인 권한 ..교수들의 무효소송 각하”


“우리 학교는 비리 대학이 아닙니다
총장만 비리 총장입니다.”파워볼사이트

■ 지난해 경성대 한성학원 이사회에선 무슨 일이? 이사회 재구성 ①

경성대 교수협의회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대는 경성대 학교법인 한성학원으로 바로 지난해 5월과 6월에 열렸던 이사회 결의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먼저 5월에 열렸던 이사회를 재구성해보면 이사 8명 중 2명의 임기가 도래해 새롭게 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이 2명 이사는 사립학교법에서 정한 개방이사입니다.

[사립학교법 제 2장 14조]
①학교법인에는 임원으로서 7인 이상의 이사와 2인 이상의 감사를 두어야 한다. 다만, 유치원만을 설치ㆍ경영하는 학교법인에는 임원으로서 5인 이상의 이사와 1인 이상의 감사를 둘 수 있다. <개정 1964. 11. 10., 1990. 4. 7., 1997. 1. 13., 1999. 8. 31.>
②이사 중 1인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사장이 된다.
③학교법인은 제1항에 따른 이사 정수의 4분의 1(단, 소수점 이하는 올림한다)에 해당하는 이사(이하 “개방이사”라 한다)를 제4항에 따른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인사 중에서 선임하여야 한다.

말 그대로 개방이사는 학교법인 이사 중 일부를 외부인사로 채워야 하는 규정으로,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개방이사를 선임하기 전에 개방이사 추천위원회라는 기구에서 2배수를 추천하면 이 가운데 한 명을 선임하게 되는 데 이날 이사회에선 그 절차만 남겨뒀던 겁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직전 개방이사였던 2명이 다시 추천받아 만장일치로 개방이사에 재선임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성대 교수협의회는 교수협의회가 개방이사 선임에 철저히 배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2012년 송수건 경성대 총장이 취임한 이듬해 경성대는 학칙상 기구였던 교수협의회를 학칙에서 삭제하고, 교수협의회를 교수회로 변경합니다. 학칙을 개정할 때 교수협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절차를 지키기는커녕 그 조항마저 삭제했습니다.

이후 2015년에는 개방이사추천위원회 자격이 있는 대학평의원회 평의원 조건을 교수협의회 추천에서 학장 추천으로 개정했습니다. 교수들은 학교가 코드에 맞는 사람들로 대학평의회를 구성하고 결과적으로 개방이사도 코드에 맞는 사람을 앉히기 위해 학칙을 불법적으로 개정했고, 이에 따른 이사회 결과는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법을 준수해 절차를 진행했다”며 교수들의 억지주장이라고 반박했죠.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1부가 지난 8일 그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놨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수협의회의 평의원 추천권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구성된 개방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이루어진 이 사건 개방이사 선임결의는 그 내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학교법인은 민법상 재단법인의 일종으로서 사적 자치의 자유를 누리지만, 사립학교법 및 그 시행령과 그에 따른 학교 정관으로 개방이사의 선임에 관한 규정을 둠으로써 학교법인의 이사선임권한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학교 운영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학교법인의 의사결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교원이 갖는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데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이사회 내부에서 학칙을 마음대로 개정하고 또 이 학칙에 따라 입맛대로 이사회를 운영하는 등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지 않을 경우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법원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 무자격 개방이사가 포함된 이사회, 총장 3연임을 결정도 무효일까? 이사회 재구성 ②

사실 교수협의회가 이번 소송을 낸 이유는, 바로 총장의 3연임을 결정한 지난해 6월 열린 이사회 결의 때문입니다. 2019년 6월 한성학원 이사회에서는 2011년 처음 취임해 연임까지 한 송수건 총장의 재연임을 의결했습니다.파워볼사이트

교수들은 개방이사 선임결의가 무효로 판결됐으니 무자격 이사들이 포함된 이사들이 포함돼 열린 이사회의 결의 내용도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학교 정관에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용하고, 다만 그 임기 중에 해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관 어디에도 교원이나 교수협의회가 총장 임용에 관여할 권한이나 절차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또, 교수협의회가 개방이사 후보자 추천에는 관여할 수 있지만, 그 개방이사가 참여한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임하는 결의와 관련해서는 법률상 이해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며, 다시 말해 사립학교법에도 총장 임용은 학교법인 권한으로 교수협의회가 소송당사자로서 지위가 없다는 겁니다.

법률적 이해관계, 당사자 적격 등 판결문에 등장하는 전문용어가 생소하지만 쉽게 말해 민사 소송에서는 A와 B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관계없는 C가 소송을 제기해서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즉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어서 법적 판단을 해보기 전에 각하로 결정됐습니다.

■ 총장님 4연임도 하실 계획이신가요?

경성대 교수협의회는 총장 연임 결의 무효 청구 소송이 각하됐지만, 이사회 구성이 불법적이라는 것은 확인됐다며 관리 감독 기관인 교육부에 한성학원 이사회 승인 취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립학교법 개정 필요성도 다시 한 번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총장이 마음만 먹으면 학칙과 정관을 변경해 자기 사람을 평의원을 앉히고 개방이사추천위원회도 구성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 장악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입니다. 현행법은 개방이사를 2배수 추천 후에 이사회에서 마지막에 선임하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또 현행 사학법에 초중고 학교장과는 달리 대학 총장은 중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데 총장이 종신 권력이 될 수 있는 한 권력집중과 이에 따른 인사 전횡, 부정행위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성대학교는 1950년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부산의 대표적인 사학입니다. 이후 설립자의 아들, 손자 등으로 4대째 이사장을 물려주고 있습니다. 현 총장은 이사장과 친인척입니다. 교수들이 세습과 비위행위 등을 폭로했다가 지난해 2명이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학교로부터 해임됐습니다. 이후 교육부는 교원소청위원회에서 해임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학교 측은 교육부의 해임취소 통보에도 해임취소와 불법행위는 별개라며 복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사회 승인을 취소하겠다는 교육부 경고에도 끄떡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재판 결과는 과연 학교 태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교수들의 집회는 다음 주에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김계애 기자 ( stone917@kbs.co.kr)

정치 폭압과 경제 실정으로 무너진 유신 독재

[정만진 기자]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비상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대통령 특별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금지, 헌법의 일부 효력 정지와 비상 국무회의에 의한 대행, 새 헌법 개정안 공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박정희는 이를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유신(維新)’이라고 설명했다.

열흘 뒤인 10월 27일 비상 국무회의는 평화적 통일 지향과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표방한 개헌안을 의결·공고했다. 약 한 달 뒤인 11월 21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율 92.9%, 찬성율 91.5%였다. 헌법이 11월 21일에 통과했는데도 이름이 ’11월 유신’ 아닌 ’10월 유신’으로 정해진 것은 박정희가 10월 17일 대통령 선언을 발표할 때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투표는 11월 실시, 결과는 10월 확정현기영의 1985년 창작 단편소설 〈겨우살이〉는 당시 상황을 증언해준다. 서울 어느  고등학교의 동료 교사인 ‘권’과 ‘나’가 핵심 등장인물이다. 소설의 첫머리 월일은 개헌 투표(유신헌법) 하루 전, 즉 1972년 11월 20일이다. 내일 날씨가 혹독하게 추워진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학교 당국은 교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오늘 단축 수업을 한다고 알린다. 학교장은 교사들에게 일찍 수업을 파해서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 모두들 가정방문을 나가라고 지시한다. 학부모들을 찾아다니며 내일 개헌 투표에 결코 기권해서는 안 된다고 홍보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교사 1인당 30호 이상의 가정방문을 실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게 학부모로부터 도장을 받아오라고 명령했다.

젊은 교사인 권과 나는 학교장의 지시에 맞서 교육의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요지의 반대 발언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도 결국은 가정방문을 위해 교문을 나서게 된다. 모두들 가정방문을 마치고 나서 저녁 무렵 술집에 모여 울분을 토로한다.

이듬해 봄 교사들 개개인 앞으로 교육부장관의 서신이 전달된다. 향후에는 반드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권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버린다. 동료 교사들은 권이 ‘봄을 기다리지 않고 도피성 이민을 떠났다’고 평가한다.

유신 헌법이 내세운 개헌 정신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자유경제질서확립, 자유와 평화수호의 재확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박정희 본인의 영구 장기 집권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국회 국정감사 폐지, 대통령에 국회해산권 부여

유신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대통령 선출도 국민 직선제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뽑힌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이 투표하는 간선제로 바꾸었다. 또 법원의 판단 없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대통령에게 주었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없애는 대신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부여했다.  파워사다리게임

그런데도 국민들은 투표율 92.9%와 찬성률 91.5%를 보여주었다. 놀랍다. 어떻게 이토록 일사분란할 수 있을까! 1961년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그해 12월 17일에 실시한 개헌 국민투표 때 투표율 85.3%, 찬성률 78.8%보다도 높다. 종신 대통령을 하겠다는 데도 이렇게 열심히 투표장에 가고, 또 찬성을 하다니!1975년 2월 12일 박정희는 독재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강해지자 신임을 묻는 형식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때 찬성률은 73.1%로 1961년 12월 17일 개헌 투표 때와 엇비슷했다. 그러나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 91.5%보다는 많이 낮은 찬성률이었다. 그런데 1980년 10월 22일 신군부가 대통령 간선제를 실시하겠다며 실시한 국민투표 때는 다시 투표율 95.5%, 찬성률 91.6%가 되었다. 

대통령 간선 때의 투표율과 찬성률

간선으로 대통령을 뽑은 선거에서도 투표율과 찬성률은 대단했다. 1972년 8대 대통령 선거 때 유권자 2359명 중 2357명이 박정희 후보를 찍었고(2명 무효), 1978년 9대 때는 2581명 중 2577명이 박정희 후보를 찍었다(무효 1, 기권 3). 1980년 11대 때는 2540명 중 2524명이 전두환 후보를 찍었다(무효 1, 기권 15). 

이극찬의 <정치학》>에 따르면, 정치 체제·정책 결정 과정(정치가, 정당, 압력단체, 대중운동, 언론 등의 활동)·정책 집행 과정(공무원, 경찰 등의 역할)·정치 주체(국민 본인)에 관해 국민이 어떠한 지식·감정·가치판단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회는 전근대적 전통 사회, 과도기적 신민(臣民) 사회, 시민적 민주 사회로 구분된다.

네 분야 모두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 시민적 민주 사회, 정치 체제와 정책 집행 과정에는 긍정적이지만 정책 결정 과정과 정치 주체에는 부정적이면 과도기적 신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전근대적 전통 사회로 규정된다.

유신 헌법 등 독재 체제를 세우고 유지하는 국민 투표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줄곧 압도적으로 긍정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1960-80년대의 우리 사회가 시민적 민주 사회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정치 제도와 권력적 통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의식도 없이 그저 전제적 통치자가 바라는 대로 따라다닌 무정치형(無政治形, apathitical) 인간 사회였다고 하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높아진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높아졌고, 박정희 정권의 실정과 폭압은 더욱 심각해졌다. 유신 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한 때는 1979년이었다. 반정부 인사들을 고문하고 연금하는 등 정부의 강압책은 끝이 없었지만, 야당·재야 세력·학생·시민사회의 저항은 오히려 고조됐다.

노동자들의 반발도 계속 이어졌다. 급기야 8월 11일에는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 중인 YH무역노조를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맞아죽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날 경찰은 신민당 총재 김영삼과 국회의원들, 기자들도 무차별로 폭행하였다. 김영삼은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여당은 이를 사대주의라고 규탄하면서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하였다. 이 일로 “김영삼 총재 제명 철회”를 요구하는 등 부산의 민심이 크게 반정부로 치달았다.

▲  부마항쟁 당시 계염령이 선포된 부산대 정문의 모습
ⓒ 부산대기록관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경제적 실정에 민심 돌아서

이 무렵은 경제적으로도 나라의 전반적 민심이 극히 나빠져 있었다. 중화학공업에 대해 이루어진 과잉·중복 투자로 말미암아 국가 경제가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되자 정부는 중소기업, 봉급생활자, 노동자, 농민 들에게 국가 경제 안정화 비용을 떠안겼다. 중소기업 부도율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도시 하층민의 생활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10월 16일 부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다. 군중은 파출소에 불을 지르고 경찰차를 부수었다.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다.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20일 시위를 진압했다. 하지만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총격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함으로써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다.  

* 이 기사를 쓰는 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과 이극찬 저서 <정치학>을 참고했습니다.

불입건 지휘한 검찰 9월 초 내부 기류 변화 후 수사 속도
검찰 “경찰 수사 증거 부족..송치 후 증거 확보해 기소”

무소속 윤상현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소속 윤상현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경찰이 ‘함바(건설현장 간이식당) 브로커’ 유상봉(74)씨의 총선 불법 개입 사건에 연루된 무소속 윤상현(57) 의원을 수사하려 하자 증거가 부족하다며 입건하지 말라고 했던 검찰이 뒤늦게 직접 수사에 나서 그를 기소까지 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1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인천지검 형사7부(이희동 부장검사)는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윤 의원과 지역 인터넷 언론사 대표이사 등 모두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윤 의원이 받는 혐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번에 기소된 공직선거법상 이익제공 혐의와 아직 기소되진 않았지만 검찰이 계속 수사하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무고, 명예훼손 혐의다.

기소된 공직선거법상 이익제공 혐의는 그가 올해 4·15 총선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 대가로 유씨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총선 때 인천 동구미추홀을 선거구의 경쟁 후보였던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안상수(73) 전 의원이 지난달 초 검찰에 고소한 내용이지만 수사는 경찰이 먼저 했다.

경찰은 올해 5월 유씨 부자와 윤 의원의 보좌관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 의원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윤 의원의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유씨로부터 이번 사건에 윤 의원이 관여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고, 실제로 윤 의원의 도움으로 유씨가 지난해 말 경기 성남에 있는 한 호텔 건설 현장에서 간이식당 운영권을 따낸 정황도 확인했다.

더구나 총선 전 유씨는 윤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안 전 의원이 과거 수십억원을 받아 챙겼다”는 허위 내용으로 안 전 의원을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의원이 유씨의 사업에 도움을 주고, 유씨가 윤 의원의 당선을 위해 경쟁 후보에 치명타를 입힐 허위 고소장을 작성한 혐의의 사건이었다.

유씨 부자와 윤 의원의 보좌관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한 경찰은 윤 의원도 소환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하겠다는 의견을 올해 8월 검찰에 밝혔다.

그러나 한 차례 보완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경찰이 보완한 기록을 다시 검토하고도 2차례나 입건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경찰은 윤 의원을 조사하지 못했고, 유씨 부자와 그의 보좌관만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총선 개입 혐의…윤상현 보좌관·함바브로커 아들 영장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총선 개입 혐의…윤상현 보좌관·함바브로커 아들 영장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게 종결될 것 같던 윤 의원의 이익제공 혐의 수사는 검찰 내 기류 변화와 함께 갑자기 급물살을 탔다.

지난달 초 검찰은 안 전 의원으로부터 윤 의원의 이익제공 등 혐의와 관련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인천지검 수사부서 관계자와 안 전 의원의 변호인이 전화 통화를 하다가 고소장을 다시 제출하는 방안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미 올해 7월 안 전 의원의 전 비서관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지만 수사에 속도를 내지 않다가 돌연 안 전 의원의 고소장을 받고는 나흘 뒤 속전속결로 고소인 조사를 끝냈다.

검찰은 지난달 7일 안 전 의원을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소장에 윤 의원의 이익제공 혐의 관련 내용이 있는데 죄명은 빠져있자 안 전 의원에게 해당 혐의에 대해서도 고소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기까지 했다.

결국 검찰은 경찰이 장기간 수사한 윤 의원의 이익제공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사실상 소환 조사조차 못 하게 하더니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한 달간 급히 수사해 경찰이 수사한 내용과 유사한 혐의로 기소했다.

한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윤 의원 사건과 같이 얽혀 있는 관련자가 많은 선거법 위반 사건을 한 달 만에 검찰이 전부 수사해 기소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미 경찰이 수사한 기록 등을 토대로 보완한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검찰의 이번 수사 지휘와 기소가 상식 밖이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윤 의원 사건을 보면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싶어 경찰에 불입건 지휘를 했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불입건 지휘 후 왜 갑자기 검찰이 안 전 의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왜 그 이후에 수사에 속도를 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윤 의원을 지난주 소환해 14시간 넘게 조사했다”며 “(경찰 수사) 당시에는 증거가 부족해 보완 수사를 지휘했고, 사건이 송치된 후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뒤 기소했다”고 말했다.

son@yna.co.kr

종이로 번호판위조..위조공기호 행사
운행정지 명령, 번호판 영치되자 범행
법원 “집유 기간 중 범행” 징역 4월형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종이로 만든 가짜 번호판을 차량에 붙이고 다닌 50대 운전자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최근 위조공기호 행사 혐의로 기소된 A(56)씨에 대해 징역 4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본인의 벤츠 차량에 종이로 만들어 위조한 자동차등록 번호판을 차량 앞에 붙이고 약 10㎞ 가량을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채권 담보용으로 획득한 해당 차량이 운행정지 명령을 받아 번호판이 영치되자 이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이 사건 종이 번호판은 공무소 또는 공무원의 직무권한에서 작성된 것으로 믿게 할 만큼 형식이나 외관을 구비하지 못했다”며 “때문에 위조된 공기호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번호판은 흰색의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며 “가까이에서 주의해 살펴보면 (정식 발급이라고) 믿을 만한 외관을 갖추지 못한 것을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진 및 영상에 의하면 이 번호판을 차량에 부착하고 운행할 경우에는 일반인으로 하여금 오신하게 할 수 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 일부 참작할 만한 사정은 있다”면서도 “A씨가 종이 번호판을 차량에 부착하고 운행한 거리가 10㎞에 이르러 짧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A씨는 지난해 1월 사기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돼 집행유예 기간에 있으면서도 또 범행을 저질렀다”며 A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gahye_k@newsis.com

[토요판] 커버스토리
코로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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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가족들께 사진 보내드리고
병원에서 ‘보호복 차림 면회’ 도와
마지막 작별인사 ‘힘내’ ‘걱정 마'”

왼쪽 사진은 지난 6일 인천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가 유리문 너머로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격리병실을 살펴보는 모습. 오른쪽 문서는 코로나19 유족인 ㅎ씨 할아버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했음을 증명하는 사망진단서.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디자인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왼쪽 사진은 지난 6일 인천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가 유리문 너머로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격리병실을 살펴보는 모습. 오른쪽 문서는 코로나19 유족인 ㅎ씨 할아버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했음을 증명하는 사망진단서.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디자인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당연한 말이지만, 철저한 방역과 의료체계가 유지돼야 하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고립되지 않은 채 ‘인간적인’ 죽음을 맞기 위해서도 방역·의료체계는 건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가족 곁에서 맞는 임종, 염습, 입관식 등 일련의 장례문화 행위를 제거하고 있다. 인간은 바이러스의 침투로 균형이 깨진 ‘한 개체의 사피엔스’로서 홀로 죽어가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다.

‘직접 사인: 코로나바이러스 뉴모니아(pneumonia·폐렴),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기간: 17일.’

지난 9월17일 세상을 떠난 한 코로나19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내용 일부다. 그가 확진(9월1일) 판정을 받은 지 불과 보름여 만에 사망했다는 것, 이 급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 고인은 서울시 성북구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중 50대 요양보호사(8월30일 확진)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된 80대 환자였다. 이 요양원에서 생활한 기간은 겨우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었지만 거동이나 의사소통에 큰 문제 없이 지내다가, 올해 초 기력 저하로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호전된 적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살아왔지만 지난 3월부터는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기 시작했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역시 고령인 배우자가 집에서 돌보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생활한 지 5개월 만인 지난 8월, 건강이 호전되어 요양원으로 옮겨 간 것이 ‘느닷없는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요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될 때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돌아가실 때까지 병실에 혼자 누워 계실 때는 또 어땠을지….”

그의 손주 ㅎ(24)씨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ㅎ씨 가족은 병원(서울의료원) 보호자실에서 격리병실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비대면 임종’이었다. 격리병실 외부에서 시시티브이를 실시간으로 보는 게 작별의 방법이 될 줄은 이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 8월 중순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한 이후, ㅎ씨처럼 ‘코로나 이별’을 겪은 이들도 급증했다. 16일 기준, 전체 사망자(441명) 3명 중 1명꼴로 최근 두달 사이 숨졌다. 8월15일부터 이날까지 사망자는 모두 136명이다. 수도권 확진자 가운데 고령자 비중이 높아 70대 이상 연령에 사망자가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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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화장, 후 장례’도 ㅎ씨에게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는 상가나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며칠 모시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장지로 발인하지만, 코로나19는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발인과 화장이 상례의 첫번째 순서가 된 것이다.

ㅎ씨 가족은 “애도할 시간을 잃어버린” 채 낯설고 당혹스러운 이별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 끝에 “자책”이 응어리졌다. 날벼락 같은 죽음이 억울하지만 탓할 대상이 없었다. “피해자인 할아버지의 감염이 그 요양보호사 잘못일까요? 그런데 그분도 누군가로부터 감염된 피해자잖아요. 그럼, 위생 수칙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감독할 의무가 있는 요양원 잘못일까요? 모르겠어요. 코로나19 앞에선 피해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해자가 불분명하니까,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저희가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너무 답답해요.”

수의를 입혀드리지 못한 채 화장부터 해야 했던 것도 가족들은 한탄스럽다. 방역당국은 감염 확산을 방지하고 사회불안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염을 생략하고 유족 동의를 얻어 화장을 진행한다. “(가족으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민으로선) 이해가 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향할 곳 없는 “원망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에서 만난 ㅎ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된 할아버지를 황망히 떠나보낸 유족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감염병으로 가족이 위독한 경우 나머지 가족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했어요. 특히 아버지는 ‘네가 대신 인터뷰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시긴 아직 심적으로 어렵지만, 저희처럼 우왕좌왕한 채 가족을 잃고 후회하는 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개인보호구 착용한 뒤 면회 가능했지만

9월 둘째주, ㅎ씨 아버지는 의료진에게서 임박한 임종을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괜찮을 때, 만나뵈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총 입원 기간 17일 동안 의료진과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다. “상황이 나빠지면 당연히 연락이 올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또 궁금하니까 매일 연락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연락을 기다릴 수도, 안 기다릴 수도 없는 애타는 시간 속에서 “너무 일찍” 이별이 도착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임종 방법을 안내받았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개인보호구(N95 마스크, 전신보호복, 속장갑, 겉장갑, 보안경, 얼굴가림막, 덧신, 헤어캡 등)를 하고 병실에서 직접 환자를 면회하는 것. 둘째, 병실 외부에서 시시티브이 영상을 통해 환자를 지켜보는 것.(의료기관에 따라 시시티브이 참관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네 고모랑 삼촌들한테 연락해줘야 되는데….” 두 선택지 앞에서 ㅎ씨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대로 얼다시피 한 아버지를 대신해 ㅎ씨가 고모, 삼촌한테 전화를 걸어 어떤 방법이 좋을지 물었다. “정말? 그것밖에 없대?” “…….”

아버지도, 고모도, 삼촌도 말문이 막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없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ㅎ씨 가족은 결국 시시티브이로 임종을 지키기로 했다. “저희 가족 중에 기저질환자가 많아요. 아버지도 주기적으로 투석 치료를 받으세요. 또 초등학생인 어린 자녀가 있는 삼촌도 개인보호구를 착용하는 게 걱정이셨죠.” 환자 가족이 보호구를 하고 임종에 참관할 경우, 의료진 입회 아래 17가지 순서에 따라 엄격한 착·탈의 교육을 받는다. 그렇다 해도 보호구에 익숙하지 않은 비의료인으로선 복잡한 착·탈의 단계를 무리 없이 수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차마 30분도 보기 어려웠던 ‘화면 속 임종’

며칠 뒤 ㅎ씨 가족들이 병원에 모였다. 6개월 만에 처음 할아버지를 보게 됐다. 지난 3월 요양병원에 입소한 할아버지와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3월부터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ㅎ씨 가족만 모인 보호자실 화면에 격리병실 시시티브이 영상이 들어왔다. 영상은, 병실 천장에 매달린 시시티브이 위치상 조망하듯 볼 수밖에 없었다. 화면은 눈앞에 있어도 화면 속 할아버지는 멀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가족들은 시시티브이를 그만 보기로 했다.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텅 빈 병실에 혼자 누워 계신 분을 보고만 있는 것도 고통”이었다. “의식도 없으신데 시시티브이로 봐서 뭐해, 무슨 의미가 있어….” 삼촌의 이 말은 임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말이기도 했다. 임종이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의식’이라면, ㅎ씨 가족에게 ‘시시티브이 임종’은 이별을 준비하기엔 너무도 간접적이고 낯선 방법이었다. 환자와 가족이 서로에게서 고립되어 영상을 띄운 채 맞이하는 죽음. 이 생경한 모습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임종 직전에는 의료진이 할아버지 휴대전화로 할아버지 얼굴을 찍은 10초 내외 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환자와 가족의 거리를 줄여보려는 의료진의 안간힘이었다. 이번엔 시시티브이로는 잘 안 보이던 산소호흡기가 보일 만큼 모습이 가까웠다.

수의도 못 입혀드렸는데…

할아버지를 시시티브이로 만나뵌 날로부터 약 일주일 뒤(9월17일), 의료진에게서 사망 연락을 받았다. 각자 집에서 대기하다가 병원으로 달려온 ㅎ씨 가족은 이전에 겪었던 마지막 작별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우선,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다. “보통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시면 원망 섞인 마음이 들 수도 있잖아요.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시지…’ 이런 마음. 그런데 이번엔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의료진도 사람인데 왜 두려움이 없겠어요. 그럼에도 내 가족 치료해줘서, 끝까지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말씀드렸어요.”

다음은, 장례 과정의 긴긴 당혹감이다. 방역당국은 유족 동의하에 코로나19 사망자를 화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ㅎ씨 가족도 ‘화장 원칙’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료시설→화장시설→장례식장으로 이어지는 ‘선 화장, 후 장례’의 세부 내용은 알지 못했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영구차에 유족이 함께 탈 수 없더라고요. 저희는 당연히 관습대로 영구차에 탄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유족은 개인 차량을 이용해 화장시설로 가야 했어요. 그때 지방에서 출발한 가족들은 빨리 오려고 기차를 탔거든요. 그런 줄 알았다면 자가용을 가져왔겠죠. 보건소나 지자체에서 안 그래도 정신없는 유족들에게 그런 정보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게 아쉬워요.” ㅎ씨 가족들은 고인을 화장시설로 먼저 떠나보낸 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화장시설로 향했다.

무엇보다 염, 입관식을 생략하고 바로 화장시설로 고인을 모신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당황의 연속이었다. “보통은 수의 입혀드리고(염) 관에 편안히 모신 걸(입관식) 확인해야 아, 이제 정말 이별이구나, 실감이 나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게 실감이 잘 안 나는 거죠. 유골함 받고도 ‘이게 정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인가’ 싶고….”

유족 ㅎ씨 제공.
유족 ㅎ씨 제공.

코로나19 사망자는 숨을 거둔 병상에서 150㎛ 두께 누출방지 의료용 비닐팩에 입고 있던 환자복 그대로 ‘밀봉’된다. 사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인이 입었던 환자복 등에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비닐팩은 다시 ‘시신백’으로 한 번 더 감싼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이중 밀봉’된 상태로 비로소 병실 바깥에 나오게 된다.

대기 중인 장례지도사 등 담당 인력이 고인을 안치실까지 모셔와 입관을 하면, 화장시설로 이동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때, 장례지도사도 의료진과 똑같이 개인보호구를 하고 일한다.

유족들은 입관식도 할 수 없고, 입관 뒤 덮개가 씌워진 관을 멀찍이 지켜보지만, 가까이 갈 수는 없다.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도 유지된다. 고인을 중심으로 다시 사람과 사람 간 거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장례지도사들이 관을 모시고 안치실에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관 쪽으로 스르르 가시는 거예요. 관이라도 한번 만져보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리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죠.”

박탈된 애도의 시간

시신은 사망한 당일 화장되었다. 현행법상 화장은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지만, 감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예외적으로 24시간 이내 화장을 할 수 있다. 화장시설에서 유골이 되어 가족 품에 안기면, 그때부터 고인은 비로소 ‘평범’해진다. 장례식장, 장지 선택에 제한이 없다.

“평범한 장례식과는 다르게, 영정사진 옆에 유골함이 놓여 있었어요. 영안실에 계시는 것보다 가까이 저희 곁에 계셨을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위안을 삼아요.”

소지품도 평범한 유품이 되려면 소독을 거쳐야 했다. “돌아가신 날 바로 병원에서 받았어요. 파란색 의료용 봉투에 휴대전화, 지갑, 양말 몇개 들어 있었어요. 별게 없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생전에 봉안을 원하지 않았다. 화장한 뒤 ‘산골’(지정된 장소에 골분을 뿌리는 일)해달라고 하셨지만, 남은 가족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았다. “수의도 못 입혀드리고 보내는데 (유골함도 없이) 어떻게 뿌리기까지 하겠어, 아버지가 그러세요. 버티실 수 없었나 봐요. 그렇게 멀리 보내드리기엔….” 결국 ㅎ씨 가족은 할아버지를 한 봉안시설에서 자연장(골분을 수목·잔디 밑이나 주변에 장사)으로 모셨다.

할아버지를 흙에 모신 그날 이후로도 애도의 시간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가족들 모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장례지원 절차 알아보려고 구청 갔다가, 주민센터 갔다가, 요양원 직원이랑 통화했다가, 요양원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변호사랑 통화했다가, 여전히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코로나19 사망자의 가족은 국가로부터 장례비용(1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ㅎ씨 가족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먼저 찾아보고서야 사망자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를 통해 장례비용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주민센터에 갔더니 그제야 지원 항목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망 전까지는 의료기관이 전면에 있지만, 사망 이후 절차는 지자체가 진행하잖아요. 의료기관에 비해 지자체는 사망자가 나올 경우 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지자체에서 코로나19 사망 시 어떤 지원과 절차가 있는지 따로 매뉴얼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가뜩이나 특수한 상황에 지친 데다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코로나19 유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속수무책 ‘워킹 뉴모니아’…종잡을 수 없는 코로나

ㅎ씨 할아버지가 서울의료원에서 숨을 거두기 나흘 전인 9월13일, 인천의료원도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았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9월17일에는 2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불과 나흘 만에 사망자 3명이 나온 것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70대 고령 환자였으며, 확진 시기가 8월 말로 비슷했다.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지역 공공병원으로서 ‘방역 관문’ 역할뿐만 아니라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처음 고안하는 등 방역에 선도적 구실을 해온 인천의료원은 국내 첫 확진자(1월20일)를 포함해 모두 649명(10월13일 기준)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해왔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시기는 이때가 유일했다.

지난 6일 오후 인천의료원 국가지정음압병동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 격리병실에 식사와 가족들이 보낸 물품을 들여보내고 있다. 인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일 오후 인천의료원 국가지정음압병동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 격리병실에 식사와 가족들이 보낸 물품을 들여보내고 있다. 인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일 코로나19 환자를 돌봐온 인천의료원 간호사 ㅁ씨와 의사 ㅇ씨를 만났다. 그들은 “의료진보다 환자와 유족에게 관심을 더 가져달라”며 직책과 실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 ㅁ씨는 30년 경력의 간호사이며, ㅇ씨는 24년 경력의 의사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 베테랑 의료진에게도 ‘코로나 임종’은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시시티브이 대신 격리병실 유리문 밖에서 직접 환자를 보신 보호자가 기억나요. 개인보호구 착용하시고요. 병실 안으로 말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유리문에다가 수성 매직으로 마지막 인사를 쓰셨어요. ‘힘내세요’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케치북이나 종이에 써서 유리문에 갖다대기도 하시고요. 손으로 하트를 만들거나, 눈짓 손짓 발짓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어요.”(간호사 ㅁ씨)

임종 전 면회도 비대면이다.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은 병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데다, 여느 중환자실처럼 면회 시간이 길지도 않다. 이 얼떨떨한 면회를 준비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오래 못 봐서 반갑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막 서두르실 거 같죠? 아니더라고요. 보호구 착용법을 세심하게 알려드리면, 굉장히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입으세요. 정말 잘 협조해주셨어요.”(간호사 ㅁ씨) 서울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인천의료원 의료진도 환자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전해주곤 한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보길 원하시거나, 가족이 격리 중이어서 병원에 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심리적인 면을 도와드리는 거지요.”(간호사 ㅁ씨)

의사 ㅇ씨는 코로나19 환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워킹 뉴모니아(폐렴), 해피 하이폭시아(저산소증)’를 꼽았다. “산소포화도가 낮은데도 불편함을 잘 못 느끼거나(‘해피 하이폭시아’) 엑스레이 찍으면 폐가 염증으로 하얀데도 밥도 잘 드시고 잘 움직이시고(‘워킹 뉴모니아’) 그러다가 훅 나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병원 케이스를 보면, 격리병실에서 푸시업도 하고 운동도 할 만큼 활동적인 환자도 계세요. 그러다 갑자기 상태가 중해져서 돌아가신 거예요. 의사로서 환자를 떠나보내는 경험이 아주 낯설지는 않아요.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와 임종 과정은 훨씬 예측이 어렵고 속수무책이랄까요.”

방역의 목적은 한 사람이라도 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인간적인’ 죽음을 맞도록 하기 위함은 아닐까. 16일 현재 국내 코로나19 확진자의 치명률은 1.76%다. 그러나 “가족은 언제나 100%다. 숫자로 쪼개고 나눌 수 없다.”(김탁환 <살아야겠다>) 작은 숫자에 가려진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유족 ㅎ씨) “속수무책”(의사 ㅇ씨)의 죽음들이, 우리가 잊고 있던 방역의 또 다른 목적을 묻고 있다.

「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다른 유족께 가닿길 바라는 위로의 마음과 감염 확산 방지에 대한 간절함으로 인터뷰를 해주신 ㅎ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환자의 존엄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을 나누어주신 인천의료원 의료진과 도움말을 주신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김준혁(의료윤리학자·치과의사), 박중철(교수·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양수진(장례지도사), 이철영(교수·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추혜인(의사·살림의원)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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